본문 바로가기

웹소설(판타지)·라이트노벨

전지적 독자 시점 - 웹소설 바닥의 뜨거운 감자

출근하면서 맨날 '김독자 생일축하해♡'라고 적혀있는 광고를 보다가 저건 어쩌다 저렇게 흥했을까 싶은 마음에 다 봤다.

재미있게 잘 봤다.

마음에 드는 부분은 스포일러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스포일러가 아니라서 리뷰에 불만 불평이 가득하지만.

 

 

사이다와 김치

 

읽으면서 '작가가 웃으면서 내 입에 사이다랑 김치를 쑤셔넣는 기분이 든다'는 생각을 했다.

 

타깃층과 상업적 노림수가 굉장히 분명하고 그걸 전혀 숨기려 하지 않는 소설이다.

속되게 요약하자면 구석에  쭈그려 앉아 웹소설이나 보던 비정규직 사원 김독자의 눈 앞에 소설 속 세계가 펼쳐지게 되고,

김독자씨가 웹소설 덕후짓을 한 경력을 바탕으로 승승장구를 하는 내용이다.

노림수가 지나치게 노골적이라 그 부분 읽을 때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쉽게 예를 들자면 소설에 이런 대사가 나오기도 함.

 

"근데 독자 씨는 어떻게 이런 걸 다 알고 계신 거예요? 생전 처음 보는 짐승을 요리하는 법도 아시고......"
"아, 그건......"
"역시! 평소에 판타지 소설을 열심히 보신 덕이겠죠? 정말, 저는 세상이 이렇게 될 줄도 모르고 바보 같이 스페인어나 외우고 있었는데."

반일감정 또한 굉장히 노골적으로 드러나있다.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한국영화식 신파 갬성과 결합되어 안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낸다.

개인적으로는 일본 만화책에서 '일본의 문화가 세계 제일!' 하던 것이 생각나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사이다나 반일은 웹소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내용이다.

근데 특이한 지점이 뭐냐면 작가가 '니들 이런 거 좋아하는 거 아니까 쓴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는 것.

덕분에 보통은 아닌 척하며 정제되어 나올 내용이 원색적으로 나오다보니 심하게 거부감이 느껴진다.

 

 

성좌물

 

'성좌물'이라는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성좌물은 대충 초월적인 존재들이 지상의 인간들을 선택하여 후원한다는 클리셰를 일컫는 말이다.

'전독시'는 인터넷 방송의 형식을 빌려와 초월적인 존재들이 인터넷 방송 플랫폼과 유사한 '스타 스트림'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지상의 인간들에게 돈을 후원하기도 하고, 간단한 의사표현을 하기도 한다.

'성좌물'이라는 장르는 꽤 오래된 장르지만, '성좌물'이라는 말 자체는 전독시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대충 이런 느낌임.

 

[상당수의 성좌들이 '징조'에 눈을 반짝입니다.]
[성좌, '긴고아의 죄수'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상황을 지켜봅니다.]
[성좌, '은밀한 모략가'가 당신의 기발한 전략을 기대합니다.]

심지어 성좌들마저 신나서 간접 메세지를 쏘고 있다. '멸살법'의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은, 지금처럼 성좌들이 단체로 파티를 벌일 때다.

보면 알겠다시피 성좌물이라는 장르는 항마력을 상당 수준 요구한다.

나는 10년 전 인터넷 소설로 쌓은 항마력과 인터넷 망령으로 살아온 세월을 바탕으로 버틸 수 있었다.

이거 보기 전에 인방물이라는 굉장히 충격적인 장르를 접해서 성좌물 정도는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호불호와 흥행

 

상술한 이유와 몇 가지 다른 이유로 인해 이 소설은 호불호가 진짜 많이 갈림.

전독시는 지하철 팬 광고를 진행할 만큼 크고 충성스러운 팬덤을 거느리고 있지만,

'전독시'라는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떠는 인간들 또한 인터넷에 꽤 많이 상주하고 있다.

 

며칠 동안 인터넷을 열심히 눈팅해본 결과, 단순히 이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 증오하는 사람들이 좀 있다.

전독시를 시발점으로 뜬금없이 남성향 소설에 BL코드를 가미하는 작품이 많아지고 있어서 미워하는 것으로 보임.

개인적으로는 근성 있게 마초 감성을 유지하는 작품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와 별개로 다 읽은 후에도 도대체 왜 이게 수많은 장르소설 중에서 가장 덕후들의 심금을 울렸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독시를 다 읽으면 그 개쩖에 감화되어 사람들이 왜 전독시에 미쳤는지 이해될 거라 믿었는데

완독한 후에도 '왜 수많은 장르소설 중에서 전독시만이 충성스러운 팬덤을 얻었나?'라는 의문은 여전했다.

첫 에피소드(불광행 3434열차 3807칸 에피소드)가 흘러가는 방향이 영 시원찮아서 초반에 보다가 때려치울 확률도 높고

성좌물이 좀 항마력을 요구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지인분께서 김독자-유중혁 관계성이 흥해서 그렇다던데

내가 책을 읽으면서 상상한 유중혁의 얼굴은 이런 느낌이라 전혀 와 닿지가 않았다.

 

 

근데 책 표지에 그려진 유중혁은 이런 얼굴이었다... 소설 내 묘사와 일치하는 공식 일러스트인데 납득이 되지 않는다....

 

 

농담이고, 내가 그쪽을 좋아하지도 않고 잘 모르기 때문에 인기 요인이 와 닿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BL코드는 작품 내에 개그성으로 나오고 마는 수준이기 때문에 그쪽으로 민감하지 않으면 크게 거슬릴 부분은 없다.

김독자와 유중혁의 관계는 일반적이지 않지만 은유를 위해 그렇게 설정된 것에 가깝다.

 

 

소감(스포일러 주의)

채워진 내용에 대한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꽉꽉 채운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요소를 최대한 결합하여 여러 재미를 주기 위해 노력한 느낌.

개인적으로는 '(애증이 묻어나는) 독자에 대한 감사 인사'로 이 소설을 요약하고 싶다. 여러모로 게임 언더테일이 많이 생각났다.

 

역사 소유권 가지고 땅따먹기 하는 파트가 제일 재밌었다.

그 후는 관성과 엔딩을 향한 집념으로 본다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몰아서 보면 그럭저럭 재미있게 볼만하다.

떡밥 풀리는 걸 좋아해서 가장 모든 떡밥이 풀리는 작품의 최후반부 또한 흥미롭게 봤다.

 

여담인데, 작가님께서 방배역은 안 가보신 듯함. 거기 빌딩 숲 아닙니다....

 

+) 1년 지나고 단행본 발매 된 거 구경할 겸 다시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