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7월에 《문과라도 안 죄송한 이세계로 감》(이하 문송, 문송안함)을 완독한 후 문과 출신임에도 문과적 소양이 부족함을 절감하였고, 이를 보충하고자 이 고전 저 고전 열심히 건드려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극적인 MSG 요소나 좋아하는 평범한 오타쿠 취향이라 뭘 제대로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SNS에서 본 드립. 뒤에 스포성 이미지가 있어서 스포 방지할 겸 씁니다.)
그런고로 '문송안함'을 다시 읽을 때엔 재작년보단 더 풍부한 지식과 함께 행간을 읽어내려갈 줄 알았건만,
실제로는 그냥 쿠소오타쿠가 늘 그렇듯이 외모 스탯이나 확인하고 있었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용 자체는 초독 때도 제대로 이해한 거 같음.
아래부터는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반역의 이야기'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저는 문과생이고 나름 자료조사를 성실히 하여 이 포스팅을 작성하고 있지만,
말씀드린대로 문과적 소양이 매우 부족한 문과생이므로 태클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스포주의
재작년에 쓴 포스팅에서 '아서 햇살광공이네요ㅎㅎ'라고 대충 넘긴 부분,
그러니까 대관식부터 아서가 보인 행보는 선조 레오니드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문송안함'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운명이라는 이름 하에 전생과 같은 행보를 반복하는데,
이는 신화부터 시작된 이야기의 원형이 여러 이야기에서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는 걸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죠.
근데 이 원형의 반복되면서 나타난 결과물이 뭔지 아십니까...?
정수읠 작가님께서 실제로 마마마를 봤는지 안 봤는지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고...
'마마마'와 '문송안함' 모두 원형의 반복일 수밖에 없고, 클레이오와 마도카가 결국 예수님 테크트리를 타는 바람에
(조금 더 정제된 언어로 말하자면 문송과 마마마 둘 다 대속 서사이므로) 유사한 방향성이 보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클레이오와 마도카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클레이오가 완벽하게 예수님 테크트리를 탄 게 아니라는 것. 비슷하지만 좀 다르게 탑니다.
그는 미혼에 (8세계 기준) 30대였으며, (타의에 의해)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와인을 즐겨마시며 무수한 고통을 받으며 자기희생을 하지만...
클레이오의 말은 결국 8세계에서 수없이 반복된 말이기 때문에 완전한 예수님 테크는 탈 수가 없습니다. 클레이오 본인의 주체성도 부족하고요.
근데 클레이오가 완벽한 메시아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이 소설이 그려내고자 하는 그림에 클레이오가 딱 들어맞게 됩니다.
마마마란 애니메이션은 1기만 두고 보았을 때 (제가 거기까지만 봄) 현대적인 신화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는 반면
문송안함은 뮤즈의 영향력으로 대변되는, 신화와 서사시의 시대의 끝을 그리고 있습니다.
때문에 클레이오가 말미에 '나는 그저 뒤지러 가는 것이 아니야...! 반복되는 삶 속에서 인류는 한발자국씩 나아갔고 덕분에 나는 돌아올 실마리를 찾았어..!'라는,
니체의 영원회귀와 초인개념이 연상되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도 결국 이 이야기가 근대로의 이행을 상징적으로 그려내는 작품이라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클레이오가 메시아 테크를 제대로 탔다면 오히려 이는 불가능했을지도.
그러므로 이 이야기에서 신화 시대의 원형을 반복하지만, 결국 반복된 굴레의 한계를 맞는 서사시의 영웅 아서만큼이나
신비조차 과학으로 규명하고자 하는 인물인 프란은 문송안함에서 중요한 축을 차지한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프란의 이탈은 파괴왕 멜키오르의 나비효과일지도 모르겠으나, 결국 그 길을 택한 건 프란이거든요.
클레이오가 아무리 현대인이고 아무리 예수님이 되는 길을 꿋꿋이 뚜벅뚜벅 걸어간다 하여도...
엔딩 직전까지는 여신님 뜻에 끌려다니는 인물이라서 문송안함이란 작품의 빅픽쳐를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프란이란 캐릭터가 필요합니다.
여담인데 현세의 모든 고난을 짊어지고 신념만을 향해 걸어가는 그 모습은 이 이야기에서 가장 주체적인 인물인 프란과 가장 수동적인 인물인 클레이오의 공통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클레이오가 프란을 아끼는 건 21C에서 온 20C 영혼의 김정진씨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런 공통점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뭐 어쨌든, 호무라가 마도카한테 집착하듯이 아서도 클레이오한테 집착합니다.
멜키오르든 아서든 무수한 반복 속에서 클레이오가 뜬금없이 나타난 변수이기 때문에 집착한다는 것은 동일하나...
클레이오가 반자의적으로 아서의 후원자 노릇을 해왔기 때문에 아서는 클레이오를 짱친이자 가족처럼 여깁니다.
여기까진 자연스러운 흐름임. 근데...
*
아서는 클레이오를 재촉해 깨우지 않았다. 대신 제 양팔을 겹쳐 교차하고는 그 위에 턱을 턱 올려 클레이오와 시선의 높이를 맞췄다.(330화 발췌)
*
????
얘네 사랑하는 거 아닌가요?
저는 남성 동성애를 성애적으로 소비하는 컨텐츠에서 그 어떤 기쁨을 얻지 못하지만,
클레이오와 아서의 사랑이 전우애와 유사가족을 넘어 파이데라스티아에 가깝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수염 부숭부숭 빅맨과 여리여리 미소년이 플라토닉 러브를 하는데, 역으로 정신적 나이차가 있으며 나이가 많은 쪽이 사실상 후견인 노릇을 하고 있잖아요?
청소년기의 우정이 연애에 비견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이건 좀...
그리고 얼굴 이야기 나온 김에, 저는 이걸 거의 세번째 읽는데, 클레이오와 아서가 잘생긴 건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하하하...
작가님이 파이데라스티아의 반복을 노린 건 아닌 거 같고, 그냥 문송 전반에 흐르는 탐미주의적 성향이 주연들 외모에까지 반영된 듯.
아무튼 잘생긴 걸 깨달으니 옛날에 볼 땐 '어우 이건 좀...' 했던 민산과 정진의 서사도 너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네요.
떡밥 줍느라 정신없었는데 클레이오가 레지나 독대하는 씬도 장난 아니더라고요?
물론 클레이오는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가기 때문에 레지나와 클레이오도 후반엔 이런 느낌 다 빠지고 우닫ㅇ탕탕 대속추진위원회같은 느낌이 되어버리긴 합니다.
오히려 초독때는 근대 이야기니까 그러려니하고 지나쳤던 부분이 좀 그랬는데...
저는 여지껏 리디에 잔뜩 달린 문송 별점 하나 리뷰들을 '고상한 취향을 가지고 계시군...'하고 대충 넘겼거든오.
근데 무슨 말씀인지 재독하면서 실감함.
물론 저는 하렘물까지 보는 쿠소오타쿠라 그런 거 신경 안 쓰긴 하는데... 덕질에 방해요소가 되지 않는다고 그 미묘한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문송은 여성 참정권 이슈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소설이며 이를 굉장히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요.
한마디로 페미니즘에 긍정적임.
솔직히 여성 캐릭터들이 노출 심한 옷 입고 나와서 키시쿤... 칵코이...! 하면서 별 볼일 없는 남자에게 들러붙는 컨텐츠에는 아무 기대도 생기지 않지만, 여성 권익 신장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소설에는 아무래도 기대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이 소설의 여성(본인이 본인의 성별을 어떻게 생각하든 생물학적 구분으로 일단 여성들)은 전부 정진과 아서를 통해 본인의 목적을 쟁취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조력자가 반드시 필요한 거죠.
기득권층이 아니므로 조력이 필요하다고 하기엔 프란이라는, 너무나도 걸출한 인물이 존재하여 대비가 될 수밖에 없고요.
정진이 민산을 짝사랑할 때 드러내는 열등감을 비롯한 저열한 감정과 나쁜 시너지를 일으켜 읽을 때 약간 기분이 안 좋아지기는 했어요.
머 어쨌든 저쨌든 쿠소오타쿠는 작품의 주연이 잘생겼다는 묘사에 힘입어 즐거운 재독을 하긴 했습니다.
못생긴 놈들이 꼴깝떠는 건 현실에서 많이 접하지만 잘생긴 놈들은 현실에서도 보기 힘드니 꼴깝마저 즐거운 것 아니겠습니까.
(처음 작성은 23년 말에 했고, 도저히 정리가 안돼서 비공개로 놔둔 글인데 문송 이북이 출간된 기념으로 그냥 공개합니다.
25년 새해가 밝기 전까지 도저히 정리할 자신이 없음... 언젠간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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