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같이 '버닝'과 '화양연화'를 본 후, 보자고 한 영화가 노잼이라 미안하다며 서로 사과쇼를 한 이후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1000만 목표 클리셰 한국영화가 아닌 이상 영화는 혼자 보러다니고 있다.
헤어질 결심도 그래서 혼자 보러 갔다왔다. 박찬욱 감독 영화는 처음인데, 칸에서 상탔다는 얘기 듣는 순간 일행을 데려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음.
근데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 그대로 대중오락영화를 보는 시각으로 봐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라서 굳이 혼자 볼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영화관을 찾아가면서 혼자 가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용산 롯데시네마에서 봤고, 버스 배차간격때문에 신용산역에서 걸어갔는데... 길이 좀...
배차 간격 때문에 걸어갔는데, 늦더라도 버스를 타야했나 싶었다.
상영관은 좌석도 넓찍하고 화면도 커서 좋았는데, 멀티플렉스지만 분위기에서 미묘하게 20년전 동네 영화관이 연상됐다.
팝콘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어서 포기하고 대신 캔음료를 사서 들어갔는데,
초반에 캔뚜껑 딸 타이밍을 잡지 못했고... 그렇게 영화 끝날 때까지 조용히 손에 음료수를 들고 있다가 나왔다.
영화는 재밌으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헤어질 결심'은 스낵컬쳐 위주의 인스턴트식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내게도 재밌게 느껴지던 영화였다.
이 영화는 통속적인 정서를 다루지만(HL이 대중적이지 않을 수 없다), 플롯과 연출은 전혀 대중적이지 않다.
그런데 대중 취향이 아니라고 어려운 건 또 아니다. 이래서 인터넷에 오타쿠 취향 영화라는 드립이 계속 나오고 있지 않나 싶다.
특히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지만, 맨날 보던 플롯에 좀 질려버린 고인물이라면 박수치면서 좋아할 영화다ㅋㅋ...
줄거리 요약은 늘 그렇듯이 귀찮으므로 네이버 영화 소개란에서 긁어옴.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
담당 형사 '해준'(박해일)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와 마주하게 된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남편의 죽음 앞에서 특별한 동요를 보이지 않는 '서래'. 경찰은 보통의 유가족과는 다른 '서래'를 용의선상에 올린다.
'해준'은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 탐문과 신문, 잠복수사를 통해 '서래'를 알아가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한편, 좀처럼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서래'는 상대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해준'을 대하는데….
진심을 숨기는 용의자, 용의자에게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는 형사.
그들의 <헤어질 결심>
수사물이지만, 이 영화는 수사물을 도입한 로맨스 장르의 변주에 좀 더 가까웠다.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도 딱 15세 수준. 내가 이 영화에서 제일 무서웠던 부분은 등장인물들이 계속 부산 사투리를 쓸 때였다.
예전에 신세계 보러갔을 때 부산사투리를 하나도 못 알아듣는 바람에 영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참사가 발생했어서...
다행히도 녹음이 굉장히 잘 되어있어서 걱정했던 탕웨이의 한국어도 아름답고 깨끗하게 잘 들렸다.(아니 근데 일단 기본적으로 한국어를 잘하세요.)
이하 스포주의
'서래'의 인생은 불행으로 점철되어있다. 서래는 병으로 고통받는 부모님을 죽였고, 한국에 밀입국한 후 가정폭력범이었던 남편을 죽인다.
'해준'의 인생은 규칙적이며 사회적으로 보기에 모범적이다. 그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형사의 이상향을 그린듯한 공직생활을 하며,
바쁜 와중에도 아내에게 요리를 해주고 아내의 그 어떤 말도 자상하게 받아준다. 때문에 그는 늘 억눌려 있으며, 불면증에 시달린다.
서래는 그런 해준을 유혹한다. 불행한 인생사에도 불구하고 약자에게는 다정한 여인의 모습(거짓은 아님)을 관능적인 형상으로 빚어낸다.
하지만 그것은 서래가 해준을 파멸의 길로 이끌었다기보단, 늘 벼랑 끝에 서 있던 해준이 서래의 손짓에 홀랑 뛰어내려버린 것에 가깝다.
해준이 애써 지켜오던 일상은 불완전했기 때문에 언젠간 붕괴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래와의 만남은 그저 계기였을 뿐.
가장 어두운 시기에 만난 그들에게 함께했던 시간은 소중한 것이 되었고,
때문에 해준은 서래를 위해 애써 지켜오던 직업적 신념을 포기하며 서래는 해준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버린다.
얼핏 보기에는 서래가 해준의 일상을 붕괴한 뒤, 뒤늦은 사랑을 위해 다시 자신의 일상을 붕괴시키는 듯한 플롯이지만
이미 두 사람의 일상은 망가져있었고, 각자의 노력으로 아슬아슬하게 형태를 붙잡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두 사람의 '헤어질 결심'은 서로를 위한 마음이 계기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운명의 시곗바늘을 좀 더 빨리 돌린 것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머 암튼 요는... 사랑으로 파멸한다고 잘못된 요약을 할 수 있는데 이게 딱히 틀린 말도 아니어서 오타쿠 심장이 두근두근댄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부모님과 직장 동료에게 추천하기는 어려운 영화지만, 그래도 보고 와서 스몰토크 소재로 써먹기는 괜찮은 영화다.
탕웨이가 예뻤다, 이렇게 운만 띄우면 알아서 물 흐르듯이 얘기가 흘러간다ㅋㅋㅋㅋ 진짜임.
평소에 드라마도 안 보고, 영화도 해외영화 위주로 봐서 탕웨이랑 박해일 빼고 배우들 누군지 하나도 몰랐다.
고경표? 박정민? 죄송한데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고경표는 얼굴은 모르고 이름만 몇 번 들어봤다.)
아니 뭐 이미 알고있던 이정현, 박용우 배우도 영화 보는 동안에는 몰랐는데요 머ㅎㅎ....
그래서 더 몰입해서 봤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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