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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판타지)·라이트노벨

[판타지 웹소설 리뷰] 문과라도 안 죄송한 이세계로 감 - (2) 문송안함 완결남


문송안함(문과라도 안 죄송한 이세계로 감)이 느닷없이 7월에 완결이 나버렸다. 일러스트가 여러 장 업로드 되길래 좀 더 오래 연재되리라 생각했었는데...
작년에 이 글을 업로드한 후 재독하면서 이런 저런 메모를 해뒀는데, 써둔 내용 날려버리기엔 좀 아까워서 정리해서 이 블로그에 업로드해봄.
나중에 각잡고 재독한 후 이 포스팅이 개소리처럼 느껴진다면 지난 포스팅처럼 수정하겠읍니다...

 

* 스포주의 *



1.
문송안함은 초반부에는 나름 웹소설의 독자 대리만족 클리셰를 성실히 지키지만, 결국 피폐행 롤러코스터를 타는 소설이죠.
심지어 작중에서도 이를 인정하는 문장까지 나옵니다(?)


지난 행복했던 전후의 시간은, 그 목적 없는 시절은 역시나 유예였던 것이다.
문과라도 안 죄송한 이세계로 감 452화 中



원작자가 인정한 롤러코스타...
하지만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그 목적없던 시절을 곱씹고 찰나의 유예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기에 문송안함이라는 글도 이리 된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결국 사랑 때문에 앞으로 주어질 찰나의 유예조차도 거부하고 불타버리는 것이 인간임을...
그리하여 작중 초반부에


"이루고자 하는 바 있지. 휴양지 호텔에서 영원히 놀고먹는 거. 아침엔 샴페인 마시고, 저녁엔 위스키 마시고, 밤엔 열두 시간 자고 사는 거."
문과라도 안 죄송한 이세계로 감 15화 中



라고 당당히 주장하던 전 김정진 현 클레이오 아세르씨는


돈도 내고 마석도 기부하며 동시에 원생 역할까지 하는 생활은, 솔직히 말하자면 전혀 즐겁지 않았다.
문과라도 안 죄송한 이세계로 감 229화 中



스스로를 대학원이라는 굴레에 처넣고, 군에 또 입대하고, 전쟁까지 겪은 후 결국....예...
아무튼 구 김정진 현 클레이오 아세르님의 장래희망 '브루주아지 한량'이 처음에는 그저 21세기의 첫 사반세기 경향의 반영처럼 보이지만,
클레이오가 작품 말미에 현실과 타협한 보수진영을 대변하는 위치에 섰을 때 '그런 것만은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독자 입장에선 좀 처참한) 깨달음이 문송안함만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2.
문송안함은 빙의물입니다. 빙의물인데.... 빙의물 주인공들은 자기가 아는 책(=미래) 지식을 바탕으로 차곡차곡 승리를 쌓아나가잖아요.
하지만 계속 같은 전개가 반복되면 지겹습니다. 그래서 어느정도 이야기가 진행되면 '너무 전개를 많이 바꿔서 이제 아는 지식이 소용이 없어졌다'나
'책에 나와있지 않던 숨은 요소가 있었다' 등등을 이유로 줄거리에 대한 지식은 힘을 잃게 됩니다.

'문송'에서 영세 출판사의 편집자인 김정진씨는 어느날 병약하고 부유한 청소년의 몸에 빙의하게 됩니다.
그런 김정진씨가 원래 세상에서 읽은 원고의 지식을 활용하여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어 돈도 벌고, 던전도 깨는 게 초반부 줄거리죠.
하지만 정진이 읽은 원고는 개정 전의 원고이고, 김정진씨가 살게 된 삶은 개정 후의 원고이기 때문에 정진씨가 가진 지식은 완벽하지 못해요.

이제 클레이오가 된 정진은 어찌됐든 판타지 주인공이므로 승승장구는 해야합니다. 투기 한 번으로는 부족하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저게 승승장구인지 나락으로 향하는 특급열차일지 헷갈릴 때가 있지만)
어쨌든 광의적 의미에서라도 클레이오는 연이어 승리를 거머쥐어야 합니다.
하지만 클레이오는 문송한 문과생이고.. 대부분의 현대인이 그렇듯이 개인으로서는 무력하며...
점점 적들 또한 클레이오가 가진 지식을 거머쥐기 때문에 클레이오가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선 다른 보완책이 필요합니다.

여신께서는 역사의 향방을 원하는 쪽으로 이끄시고자 클레이오에게 부와 마법적 능력을 선물하셨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기에
클레이오는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과거를 돌이킬 수 있는 능력 또한 받게 됩니다.
'편집자 권한'이라는 메타픽션적 요소는 돌이켜보면 일종의 루프물적 요소이기도 합니다.
원고의 내용을 조금 바꿀 수 있다는 지점에서 변형된 루프물이라고나 할까요. 결국 빙의 하나로는 부족하여 회귀 능력까지 받게 된 거죠.

이런저런 이유로 루프물적 요소가 가미되었고, 빙의 요소 하나만으로는 장기적으로 이야기를 끌고가기 어렵기에,
(400화쯤 오니 클레이오가 가진 지식은 이제 쓸모가 없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루프물의 특성이 더 강해집니다.
전쟁 파트는 전쟁을 미화하길 거부하는 작가의 강력한 의지와 이런 작품 특성이 맞물려서 클레이오의 원맨쇼 루프물이 됨.

시간의 반복으로 인한 인간성의 마모 또한 루프물에서 자주 다뤄지는 소재인데요, 클레이오의 육체와 정신 모두가 점점 시체가 되어가는 것도ㅠㅠ
돌이킴으로 인한 피로가 한몫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신이 예비한 길에 끌려다니는 피로와... 말도 되지 않는 잔인한 상황... 그리고 고독한 반복..
이 모두가 클레이오를 저리 만들었다...

덧. 문송만이 유일한 변주는 아니고 빙의물 클리셰의 변주는 거의 모든 빙의물이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3.
작가님께서 독자들이 김정진씨와 가지고 있을 교집합을 묘사하는 방식을 좋아합니다.
애상이 주가 될 때도 있고 날선 시각이 미처 숨겨지지 않을 때도 있죠.


키 큰 메타세콰이어 나무의 가지가 나붓이 흔들리고, 잘 쌓은 블록처럼 반듯한 판상형 건물을 끝도 없이 펼쳐진 것 같았다.
민산과 한 걸음 떨어져 걷는 그 밤엔,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마치 미로 정원처럼 느껴졌다.
문과라도 안 죄송한 이세계로 감 129화 中


 


그렇지만 어떤 봄날의 한나절만은 오래도록 남아 기억의 지층 한 겹을 이루게 된다.
오월의 첫날, 학교 앞 차로를 점령하고 걷던 대오, 익숙한 곡조이지만 낯선 가사의 노래들.
한 국가나 한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 가치를, 앳되고 세상모를 것 같은 동료들이 말하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던 기억.
문과라도 안 죄송한 이세계로 감 170화 中



그래서 그런지, 클레이오가 김치 찾을 때보다 민산 볼 때 '아이씨, 이걸 한국인이 썼군' 싶을 때가 있어요.


4.
다른 독자분께서 지적하셨다시피, 여신이 클레이오를 아서 곁에 가져다둔 것은 아서의 눈을 가리기 위함이었지만,
결국 클레이오의 존재가 아서의 눈을 틔우게 됐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발립니다.
그렇게 여신과 클레이오가 애써 지켜낸 아서의 순수성이 결국에는 아서가 광증에 물들지 않도록 하죠.
아서는 그 시간의 불합리함을 지적했고, 문송이란 소설도 (성공 여부와는 관계없이) 줄곧 고착된 구조의 전복에 대한 이야기임을 피력했지만...
웃기게도 집중된 고통이라는 불의가 안정된 변화로의 이행을 일부 담보했습니다.

클레이오 삼촌의 아서 양육기(feat. 여신님)의 결과가 문송안함의 후반부 전개의 방향성을 결정지은 것이나 마찬가지기에,
아서를 보면 '기질과 양육 모두가 중요합니다.' 이딴 말밖에 생각나지 않는 지경에 이름. 이렇게 유년기가 소중한 것이며 다정은 체력에서 오는 것임을...

엔딩은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예상과는 좀 달랐습니다.
햇살광공 아서쿤이 모든 걸 뒤엎는 내용일 줄 알았는데, 한계가 명확히 드러났죠.
다만 개인의 힘은 미약할지언정 축적되어 역사의 길을 튼다는 언급이 나오기는 하는군요. 여러모로 웹소설답지 않은 엔딩이었습니다.

여담인데 아서 삽화 볼 때마다 어떻게든 인기남 느낌을 주지 않으려는 정수읠 작가님의 처절한 노력이 느껴짐.
클레이오에게는 그런 시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ㅋㅋㅋㅋㅋㅋ


5.
문송안함에서 민산이 서울에서 살던 곳은 반포1,2,4주구 주공아파트단지입니다. 위치도 그렇거니와 상가 묘사가 빼도박도 못하게 동일하거든요.


호프집, 사진관, 죽집, 영어 보습학원 간판이 낮게 걸린 가로 상가 앞에서 마법식을 펼친다는 게 상상이 안 갔던 것이다.
문과라도 안 죄송한 이세계로 감 302화 中



근데 사실 민산이 살았다던 반포아파트 92동은 없습니다. 복층형 구조를 단층형으로 변경하면서 92동과 93동이 사라졌거든요.
작품 외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연재 당시만 해도 멀쩡히 사람들 잘 살고 있던 남의 아파트 동수를 가져올 수 없어서 그랬겠거니 싶지만,
이런 존재하지 않는 장소가 언급되어 이 소설이 환상성이 더 배가되는 것이 아닐까요?

 


6.

클레이오 교수님 되니까 좀... 애들한테 먹을 거 자주 사주던 돈 많은 명예교수님 생각남.. .

 


제가 문과생인데...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여 제 생각을 제대로 언어로 풀어낼 수 없음에 통탄하고 있습니다.
개인적 부족함을 통렬하게 느끼게 해준 좋은 독서였습니다^^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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