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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만화

[만화 리뷰] 사랑을 모르는 우리는 - 청춘물의 탈을 쓴 마라맛 순정만화

 

사전정보 없이 읽는 걸 추천한다. 군상극인 척 시작하지만 진짜 주인공이 있는 만화라서.

 

이 만화는 1권에서 나오(벳쇼 나오히코)와 이즈미의 연애사를 빠른 속도로 때리고 시작한다. 

 

벳쇼 나오히코

 

시오사키 이즈미

 

그리고 에이지가 둘 중 하나에게 마음이 있다는 묘사가 나오는데...

이게 평범한 순정만화의 섭남 모먼트일지, 아니면 '이러지마 제발'의 재림일지 궁금해서 2권을 빨리 내놓으라고 외치며 달리게 된 것이다.

 

 

 

이하 스포주의

 

당연히 전자입니다. BL도 안 보면서 뻔한 거 싫다고 순정만화에서 이러지마 제발을 찾은 내 잘못이다. 진짜 BL루트 타면 읽지도 못할 인간이...

하지만 (이야기 중반부가 되서야 확인 가능한) 에이지의 포지션은 내 예상보다 훨씬 재밌었다.

 

아이하라 에이지

 

나오와 이즈미의 연애사에서 에이지는 딱 '순정만화의 좋은 서브남주' 역할을 하고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이즈미만 바라보고, 아직도 이즈미를 좋아하면서도 나오와 이즈미의 연애를 돕고 응원해주는 착한 조연 남자주인공.

그렇게 평행선을 달리던 이들의 연애는 후지무라가 등장하여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후지무라 코하루

 

후지무라는 개새끼 남자친구에게 호구 잡혀서 지갑 역할을 하다가.. 옆에서 벤츠미를 뿜뿜하는 나오에게 빠지게 된다.

전남친한테 호구 잡혀있길래 그저 맹하고 귀여운 캐릭터인줄 알았던 후지무라는 갑자기 '여친 있음? 상관없음. 내가 나오 가질 거임.'을 시전한다...

그렇다, 후지무라는 악역 여자 조연 포지션이었던 것이다.

후지무라는 의도적으로 이즈미에게 접근하고, 에이지는 이를 견제하기 위해 후지무라와 계약연애를 시작하게 된다.

 

분명히 나오와 이즈미가 연애 시작할 때는 풋풋했는데, 권수가 쌓일 수록 매운 맛이 되었다...

이게 끝인가? 이들을 자기들의 감정을 정리하고 나오와 이즈미에 대한 기만을 청산하겠다며 자신들의 감정을 잘 연애하고 있는 커플에게 고백해버린다.

매번 회귀자의 정보독식만 보다가 고백으로 정보의 평등을 이룩하고 마음의 짐을 떨치는 순정만화 모먼트가 너무 낯선 것과는 별개로,

나오와 이즈미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나 저러나 날벼락이나 마찬가지다.

작중에 나온 대사를 빌리면, '이즈미가 순진하고, 나오가 다정'하기 때문에 다들 이해하고 행복해진 거지, 현실이었다면 파탄각이다.

그렇게 한 번 시작된 눈물의 고백 파티는 몇 권에 걸쳐 이어지는데... <호시노, 눈을 감아>에서 주구장창 나왔던 조언타임의 악몽이 떠올랐다. 

 

내가 조언타임을 안 좋아했던 것과는 별개로 나오와 이즈미는 고백을 통해 성장하고, 새로운 사랑을 맞이하게 된다.

네, 섭남과 여조는 이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대충 남아있으니까, 안타까우니까 둘을 사랑의 작대기로 이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 섭남과 여조이고, 이 만화는 두 사람의 마음이 바뀌는 과정을 설득력있게 그리려는 시도였다.

작품 중후반부까지 이즈미를 좋아했던 에이지의 감정이 서서히 변화하는 모습과, 후반부에서 드러난 후지무라의 안정애착을 향한 갈망은

두 주인공의 사랑의 향방이 변했음에도 <사랑을 모르는 우리는>의 기틀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주었다.

 

나오와 이즈미가 주인공인만큼 그들의 사랑에도 조연이 존재한다.

에이지의 친구인 세나미는 냉미녀 이케자와를 짝사랑하고, 이케자와와 접점이 있는 에이지에게 이케자와를 자기 공연에 초대해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에이지는 성실하게 친구와 이케자와를 이어주기 위해 이케자와에게 열심히 공연에 오라고 부탁하고, 의도치않게 이케자와를 꼬셔버리게 된다(...)

세나미가 에이지에게 부탁할 때부터 탄식했다. 아이고, 이케자와는 세나미가 아닌 에이지를 좋아하겠구나 싶어서ㅋㅋㅋ....

 

세나미 타이치

 

이케자와 미즈호

 

결국 이들 또한 해피엔딩을 맞는데, 그 과정 또한 꼼꼼하게 그려진다.

이 이야기가 사랑의 조연이 아닌, 주인공을 다룬 이야기인만큼 세나미와 이케자와의 이야기에도 성의를 보인 것이다.

결국 서브남주와 여자조연의 연애담은 군상극으로서 여섯 명의 감정을 성의있게 담아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사랑을 모르는 우리는>의 가장 특이한 지점이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