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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애니·게임·기타

소드 아트 온라인 ~소아온은 왜 그렇게 흥했나~

 

(2017년에 씀. 지금은 좀 다르게 생각하는데, 제대로 쓰려면 소아온 앨리시제이션도 봐야하고 재탕도 해야돼서 수정할 생각이 없음...)

 

  요즘 양웹을 눈팅하고 있는데요, 소아온 극장판 개봉 때문인지 다시 소드 아트 온라인 이야기가 흥하고 있더라고요. 소아온이 해외 시장에서 유독 성공을 거뒀는데 불세출의 명작이라 하기엔 조금 허점이 많은 작품이라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듯 보였습니다. 왜 이런 '허점많은 이야기'가 성공했는지 계속 이야기를 하는데 거의 앉아서 논문을 쓸 기세였음... 어쨌든 양덕들의 논문(?)을 보고 저도 제 소감이나 느낀 점, 한국 시장을 꾸준히 보면서 느낀 바를 덧붙여 '왜 소아온 프랜차이즈는 흥했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제가 소드 아트 온라인을 처음 본 게 2015년 초였습니다. 원래 제가 꽤 오랜 기간 애니는 보지 않았는데 이런 저런 일 때문에 심적으로 너무 힘들어져서 저를 달래고자 애니플러스 정액권을 2달 끊었습니다. 휴덕을 했으니 뭐가 유명한지도 잘 모르겠고 고민하다 그냥 썸네일이 마음에 들어서 소드 아트 온라인을 정주행했습니다.

 

  솔직히 재밌었어요. 이 블로그 보면 아시겠지만 잡다하게 서브컬쳐 컨텐츠 많이 봤습니다. 소드 아트 온라인에서 자주 쓰이는 클리셰엔 이미 이골이 나있었습니다. 근데도 재밌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소아온 덕질 꽤 열심히 했습니다.^^;;; 선행상영회도 다녀옴ㅎㅎ.... 분명히 지루할 땐 정말 지루했고, 뻔한 내용에 노린 서비스신만 잔뜩 나온 애니메이션이죠. 거기에 선악에 대한 단순하고도 얕은 생각, 지나치게 평면적인 캐릭터와 그만큼 단순한 인간관계, 서로 사랑하며 싸우지 않는 비현실적인 처첩들, 망한 트라우마 묘사... 이렇게나 허점이 많은 클리셰 덩어리를 제가 왜 좋아하나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소아온은 주인공이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다양한 인물'이 매력적으로 나오며 대부분 선합니다.

 

  다음 웹툰 중에 트레이스라고 있습니다. 특수 능력을 가진 '트레이스'들이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는 만화로 다음 만화속세상의 마지막 황금기를 이끌었던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웹툰도 마찬가지로 허점이 많은 만화에요. 흔한 대중영화 감성을 따른다고 해야될까요. 가족애와 사랑이 중심이 되지만 감정에 대한 깊은 생각 없이 예찬만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당시에 다른 재미있는 웹툰도 많았지만 꽤 허점이 많았고 작화도 말이 많았던 트레이스가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주인공이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우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다양한 인물'이 매력적으로 나오며 대부분 선했어요. 네이버 웹툰 중에서 최상위 인기를 누리고 있는 노블레스나 신의 탑, 갓 오브 하이스쿨도 비슷합니다. 생각보다 뚜렷한 목표를 갖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만화가 시중에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요는 많아요. 멋있는 액션이 나오고 대중적으로 모두가 좋아하는 이야기기 때문이죠. 거대한 악이 있고 목숨을 다해 맞서 싸우기 때문에 이야기에 스릴이 넘칩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선하기 때문에 싸워 나가는 과정을 함께하는 게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 한 마디로 스릴있지만 편한 이야기입니다. 스릴에 대한 욕구와 안전에 대한 욕구를 동시에 채워주는 이야기.  소드 아트 온라인은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 부분에서 반론을 제기하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아니, 내가 사랑하는 만화 중에 인기를 끌지 못하는 명작이 있다, 근데 그 작품도 주인공이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우는 이야기다. 또한 예쁘고 잘생기고 멋지고 하나같이 인품도 훌륭한 캐릭터들이 나오는데 왜 내 장르는 나만 좋아하냐. 키워드는 '왜색'과 '현대적임'에 있다고 봅니다.

 

  소아온을 보며 느낀 게 일본 작품임에도 의외로 왜색이 상당히 적고 꽤 오래 전 작품임에도 현대적이라는 거였습니다. 물론 스구하가 오빠를 좋아할 때 아, 여동생 모에가 나오는 거 보니 일본 작품이구나 싶긴 했지만 배경이 '게임 속'이다보니 일본인들이라는 느낌이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했다시피 소아온에는 깊은 철학도 없으며 캐릭터들과 그들 사이의 관계도 굉장히 단순하기 그지 없습니다. 캐릭터가 고민하고 생각할 수록 작가의 색채가 강하게 묻어나옵니다. '일본인'의 생각이 강하게 묻어나오는 거죠.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 법은 문화권마다 다릅니다. 나라에 따라 다르고요. 하지만 소아온의 인간관계는 온라인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다지 통상적이지도 않은 데다가 굉장히 단순화되어있기 때문에 '일본 특유의 인간관계'가 드러날 일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특정 독자가 크게 공감할 여지는 없지만 다수의 대중이 어느 정도 공감하기에는 쉬운 여건입니다. 때문에 진입장벽이 낮습니다.

 

  그리고 소아온은 '미래'를 다루기 때문에 꽤나 현대적입니다. 최소한 옛날 느낌이 나진 않죠. 양산형 겜판소를 너무 많이 봐서 지긋지긋해졌다면 저도 별로 할 말은 없지만요.. 다만 겜판소 많이 보시던 분이 아니라면 꽤 현대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입니다. 현대의 감성을 담아내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전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휴대폰을 항상 지니고 다니던 세대가 삐삐 시대의 감성을 이해하려면 많이 노력해야 되잖아요. 최소한 소아온은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더불어 블랙기업(...) A1의 작화도 훌륭하고 캐릭터 디자인도 매력적입니다. 개인적으로 소드 아트 온라인의 캐릭터 디자인은 정말 잘 뽑혔다고 생각해요. 생각보다 소아온만큼 캐릭터들이 섬세하고 예쁜 코스츔을 입고 독특하고 예쁜 헤어를 하고 나오는 작품은 드뭅니다. 그리고 이런 캐릭터에 색이 입혀지고, 움직이고, 성우의 목소리까지 입혀지면 단순히 텍스트로 접할 때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덕분에 소아온은 각 캐릭터마다 팬이 많습니다. 팬심은 컨텐츠를 긴 기간동안 지속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캐릭터 덕질은 마치 아이돌 팬덤과도 같아서 풍요의 여신상을 비롯한 관련 굿즈를 끊임없이 소비하게 하고 프랜차이즈의 망작도 울면서 사게 만들 거든요. 소아온은 이미 매력적인 여캐를 다수 장착하고 있는데다 앞으로도 매력적인 여캐(앨리스 외 다수)가 애니화될 예정이라 팔아먹기 딱 좋습니다. 그리고 이건 아까 왜색의 연장선상과 같은 이야기인데요, 비중이 높은 여캐인 아스나, 시논, 스구하, 앨리스가 꽤 독립적이고 강한 여자입니다. 극동아시아를 벗어나서 봤을 땐 귀엽고 순종적인 캐릭터보단 오히려 훨씬 대중적이지 않나 싶어요.

 

  마지막으로 소아온은 결정적으로 검증된 클리셰를 착실하게 따르기 때문에 무난하게 재밌습니다. 그리고 그 무난한 재미를 쩐으로 만들 산업구조를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이 뒷받침하고 있어요. 같은 이야기라도 확성기가 크니 더 멀리 잘 전달됩니다. 거부할 이야기도 아닙니다. 무난하게 즐길 거리가 많죠. 허들이 낮으니 여러 사람이 입덕하기 좋고요. 재미는 있고 스릴도 넘치는데 편하고, 왜색이나 고전미같은 부분도 없으니 작품 자체의 장벽이 상당히 낮습니다. 워낙 관련 산업 기반이 탄탄하니 팔아먹을 구석도 기가 막히게 잘 찾아냅니다. 텅장이 되어 그만 덕질할까 싶다가도 예쁜 여캐들이 탈덕을 막고 계속 컨텐츠를 소비하게 만들고요. 그렇게 소아온이 돈이 되니까 계속 이야기가 확장되고 프랜차이즈가 거대해지는 겁니다.

 

  네, 결론은 소아온이 흥한 이유는 이렇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시장이 작품에 화려함을 더하고 확성기가 되어 여럿에게 알렸는데 그 작품이 일본 특유의 색이 옅은 무난하게 재밌는 이야기이라서 수많은 사람들이 보기 시작했고요. 근데 관련 컨텐츠가 많아서 헤어나올 수 없는 그런 이야기. 네 그렇습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최근에 리제로가 굉장히 흥한 걸로 알고있는데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작품에 대해 하나하나 감상을 쓰기 시작하면 비난만 한 세단락 쓸 수 있을 거 같은데.. 소아온 팬들 다 동의하실 겁니다. 이거 우주명작이라고 생각하고 팬질하는 거 아니라고. 그냥 어쩌다보니 개미지옥같이 빠져나올 수 없어서 계속 팬으로 남아있다고.

 

 

+) 소아온의 성공이 유일한 흥행의 길이라곤 생각하진 않습니다. 일례로 데스노트는 오히려 생각이 과도하게 들어간 작품에 가깝죠. 연출력으로 공책에 이름쓰기를 커버친 작품... 하지만 작품 자체의 재미로 세계를 사로잡았죠. 다른 길도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소아온의 흥행은 소아온으로만 멈췄으면,하는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양질의 작품을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