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혜 작가의 전작인 《자두》를 상당히 인상깊게 읽어서 소장까지 했고, 차기작인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받아서 읽었다.
책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이걸 미리 조금 읽었다면 절대 집에 가져오지 않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극중 인물이 지나치게 '익숙하다'고 느껴지는 소설을 선호하지는 않거든요. 그게 제 편향적 독서의 결말이라도 말입니다.
그런고로 가족과 사이가 나쁘고,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며 독서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에 나가는 진보적 여성 화자가 처음부터 달가운 것은 아니었음.
근데 왜 끝까지 읽었냐고요? 재밌으니까.
앞서 말했듯, 주인공 '시옷'은 정신과 의사의 권유에 따라 일기를 쓰기 위해 일기 쓰기 교실에 나간다.
'시옷'의 일기는 시옷의 현재가 아닌 1980년, 시옷의 어린 시절을 담아낸다.
족히 40년은 지난 기억일테지만, 소설의 형식을 빌린 일기는 현실과 중첩되며 현실과 이야기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난 작중의 세계와 안전하게 유리되어 관전의 기쁨만을 누리길 바라는 글러먹은 오타쿠라 이런 시도가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그건 내가 글러먹어서 그런 것이고...
이하 스포주의
시옷과 시옷의 어머니 사이의 어긋난 관계는 시옷과 딸의 관계로 그대로 이어진다.
시옷의 어머니는 휘몰아치는 사회적 풍랑 속에서 자신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부던히 애를 쓰느라 큰 딸의 마음에 귀 기울일 새가 없었고,
시옷 또한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 위해, 딸의 마음을 이해할 여유조차 갖지 못하는 엄마가 된다.
시옷은 어머니를 일방적으로 이해하며, 시옷의 딸 또한 시옷이 모르는 어딘가에서 시옷을 일방적으로 이해하고 마는 것이다.
아프고 쓰라린 경험 속에도 아름다움은 존재한다. 찬란함을 잊고 아픔만 되새기던 시옷은 기록을 통해 기억을 다시 마주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삶은 계속 현재를 밟아 과거를 양산하는 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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