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2회독 하고 리뷰 쓴다.
제대로 된 리뷰를 쓰려면 최소한 2회독은 하고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제게는 웹소설 입문 초기의 열정따위라곤 눈꼽만큼도 남아있지 않아서 그동안 1회독만 함...
솔직히 '유가미 군은 친구가 없다'(이하 '유가미군')을 재독할 줄도 몰랐다. 초반부 개그가 내 취향은 아니었거든요?
전 치히로를 좋아했고, 유가미도 나름 귀여워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가미가 종이에 갇힌 2D '고등학생'이라 그런겁니다.
대충 읽고 마려고 했는데, 엔딩 본 후 이건 재독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재독을 한 후에는 '유가미군'의 여파에 후유증까지 앓았습니다.
그리고 그게 굉장히 짜증났어요. 유가미 군 때문에 후유증 앓을 계획 따윈 없었단 말임....
일단 제가 왜 후유증을 부정했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겠죠?
이 이야기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유가미 유지'는 제목 그대로 친구가 없습니다. 그리고 1권만 봐도 왜 그런지 보여요.
근데 이 친구가 주변 인물에게는 짜증나는 캐릭터지만 독자에게는 그다지 짜증나는 캐릭터는 아닙니다.
왜냐면... 이 친구는 자발적 아싸이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친구가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이에요. 인간관계의 상처 때문도 아니고 그냥 천성이 그럼.
짜증나는 사람들에게 본의 아니게 시달린 사람들의 안 좋은 기억을 상기시키지도 않고,
짜증난다고 확 밀어내버린 사람들의 죄책감도 건드리지 않는 기묘한 캐릭터입니다.
뭐 어쨌든... 유가미군은 짜증나는 스타일입니다. 유가미의 행동이 정의로웠든 무심했든 말이에요.
또 다른 주인공인 전학생 치히로는 유가미와 달리 상당히 순하고 착한 친구입니다.
성격은 모난 구석이 없지만, 잦은 전학 때문에 친구 사귀는 법을 잘 몰라요. 친구가 없다보니, 마찬가지로 친구가 없는 옆자리 유가미와 자주 엮이게 됩니다.
이 만화는 기본적으로 완전히 정반대 성향의 두 아싸가 서로 얽히면서 발생하는 여러 사건을 재밌게 그리는 개그 시트콤에 가깝습니다.
이하 스포주의
근데 리디북스 리뷰에 '최고의 순애'라는 리뷰가 있는 거예요, 무섭게...
아무리 생각해도 치히로랑 유가미랑 사랑한다는 얘기 같은데, 유가미가 싫지 않은 건 얘가 어리고, 어쨌거나 그가 자의적으로 혼자 지내기 때문이지..
유가미는 어쨌든 1cm도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인간군상이란 말임.
그렇게 저는 현실부정을 하면서 엔딩까지 갔는데요,
...작가님의 극적인 설득에 이들의 순애를 납득하고 순애의 흔적을 찾기 위해 1권까지 거슬러가게 된 것입니다.
가랑비의 물 젖듯 그들의 사랑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지만, 내가 그 사랑을 왜 받아들였는지 여전히 이해가 안되긴 했거든요...
유가미가 그다지 섬세한 성격이 아닌 것과 달리, 이 만화는 유가미의 감정선을 정말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치히로는 처음 유가미에게 옆자리 전학생에 불과했지만, 서로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귀찮은 옆자리 전학생으로,
귀찮지만 조금 걱정되는 옆자리 전학생으로, 걱정되지만 착하고 괜찮은 옆자리 전학생으로, 도와주고 싶은 옆자리 전학생으로 점점 변해가거든요.
독자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치히로에 대한 유가미의 인식이 변화하는 과정을 그려내는 섬세함이 돌아버린 만화입니다.
조용히 진행하는 부분도 있지만, 대놓고 드러내는 부분도 있어야겠죠? 유가미 군은 치히로에게 '너는 내 친구가 아니다'는 이야기를 여러번 합니다.
유가미는 저도 (독자도) 모르게 조금씩 치히로를 향한 마음을 키워갔지만, 결국 지도 그걸 모르고 졸업하는 듯합니다.
덕분에 의도치 않게 치히로에게 '너는 내 친구 아님'을 시전해서 치히로에게 꽤 큰 상처를 줬었죠.
이 때 유가미는 진짜 치히로가 '친구가 아니다'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어려서 좋아하는 친구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자신을 위한 선택으로 합리화하던 유가미니까요.
그럼에도 사람이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고 하잖아요? 유가미는 치히로가 있다 없어지니까 그제야 슬슬 자기가 치히로를 좋아했구나 자각합니다.
목적 없이 움직이지 않는 유가미는 치히로를 좋아해서 치히로에게 다가가 다시 치히로와의 시간을 갖지만,
결국 '치히로는 친구가 아니다'는 말로 이야기의 끝을 마무리합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너랑 단순히 친구로 끝날 생각이 없단 뜻에 가까웠고, 이런 대조와 은유적 고백은 오타쿠를 처돌게 만드는 겁니다...
치히로는 제가 말하면서도 좀 어이없는데, 로맨스 소설 '울어봐, 빌어도 좋고'(이하 울빌)의 주인공과 감정선이 똑같습니다. (아래 울빌 스포도 있음)
레일라가 첨에는 마티어스 미친새끼, 미친새끼!! 하다가 그러다보니 오히려 마티어스에게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잖아요. 치히로도 그럼.
치히로는 주위에 베풀기만 하지, 얘가 작중에서 온전히 의지하고 기대는 사람은 의외로 유가미밖에 없습니다..
첨에는 만만하고 (치히로 입장에서는 짜증나는 놈이니) 다른 사람들과 막 대할 때 죄책감도 안 드니까 막 대한다는 느낌인데,
솔직한 관계를 통해 쌓을 수 있는 유대감은 그렇지 않은 것에 비해 더 특별하잖아요?
거기에 주변에서 밀어주고.. 분위기도 타다가... 솔직히 치히로 아빠가 그냥 유가미랑 같이 만담 공연 보러갔으면 얘들이 안 이어졌을 수도 있겠다 싶음.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 치히로의 유년기까지 보면, 결국 치히로는 전학만 잦지 않았어도 유가미랑 얽히지 않았을 인물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뭐, 요는 담백하게 끝날 수도 있었던 관계가 우연한 계기로 급물살을 탄 것도 오타쿠를 처돌게 만드는 포인트인 것입니다....
다시 후유증 얘기로 돌아가면, 치히로를 응원하면서 읽다보니 3학년 때 펼쳐지는 러브러브 분위기가 당황스러웠고 부정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때도 빌드업이 제대로 된 게 보여서 흠조차 잡을 수 없어 슬펐거든요ㅋㅋㅋㅋㅋ
저는 치히로와 아무 관계도 없는 독자이지만, 딸이 좋다는데 결혼 허락하는 장인장모의 심정으로 엔딩을 봤습니다...
재독때는 제가 엔딩을 알고 봐서 그런지, 두 주인공이 성장하는 부분까지 꼼꼼히 챙겨봐서 그런지 그냥 두 사람을 응원하게 됐습니다.
진짜 유가미 막판에 치히로 때문에 빵긋할 때 되게 많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tmi인데 어쨌든 응원한다...
제가 순애엔딩에 충격을 받고, 그걸 납득하고 좋아하는 제 자신에 두 번 충격을 받아서 그 얘기를 엄청 길게 했는데,
'유가미군'은 러브라인 말고 다른 부분도 공들여 만든 만화입니다.
특히, 조연캐를 진짜 잘 썼어요. 개그캐인데 현실성을 놓치지 않았고, 치히로와 유가미한테 들인 공만큼 조연캐 구성에도 공을 들인 티가 납니다.
다른 만화에서 보기 힘든 카도타 같은 캐릭터를 만나서 기뻤음.
일상 이야기에 비해 야구의 비중이 적긴 하지만, 스포츠 안 좋아하는 입장에서도 경기가 기다려질만큼 야구경기가 재밌기도 했습니다.
함께 땀 흘리며 키워나가는 우정, 불꽃 튀는 승부, 정점을 향하는 열정 같은 가치가... 없어서 그런 걸까요.
그리고 연애에 관심없어도 대부분 은유적인 표현을 사용해 묘사되고, 다른 요소가 알차서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듯.
거기에 >성희롱 없음< 이쯤되면 갓만화임.
그러니까 작가님 언제 돌아오십니까.. 난 기다린 지 한달밖에 안 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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