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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로맨스)

[로판 e북 리뷰] 숨자취를 더듬은 적 없다 - 아마사에 대하여

그동안 이 블로그에 올라온 리뷰는 '내돈내산'의 범위 내에 있는 책을 다뤘습니다.

악착같이 기다리며 무료로 봤든, 카드포인트랑 적립포인트로 사서 화폐로 지불한 금액이 0라 하든, 그건 '내돈내산'입니다.

돈을 줬든, 시간을 줬든, 카드 포인트를 줬든 어쨌든 기회비용의 개념으로 봤을 때 전 적당한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하지만 이 <숨자취를 더듬은 적 없다>는 선물받은 책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선물해주신 분이 서사희 작가님의 팬인 듯하여 다른 리뷰와 결이 많이 다를 예정입니다.

읽을 때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래 리뷰에는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사헬에 영원한 영광을.”
조국 아사헬이 멸망했다. 북마녀의 피를 이은 어린 왕녀의 수호자이자 아사헬의 술사로서 아비가일은 끝없는 지옥에 순종해야만 했다.

“성하의 총애를 얻어라. 오팔이 되어 정보를 빼내고…… 저주의 술을 걸어.”
지옥이었던 수용소에 처박은 것으로도 모자라 두 번째 지옥으로마저 이끄는 적국의 기사, 알렉 오스딘.
“그대에게 억울한 점이 있다면 기꺼이 나서서 도울 것입니다.”
독에 가까울 만큼 지나친 다정함을 품은 적국의 성하, 베네딕트 외그랑셰.


“그 무엇도, 내게서는 들을 수 있는 것이 없다.”
다시 돌아올 봄, 그러나 돌아오지 않을 이 봄의 베네딕트. 아비가일은 그것이 못내 슬펐다.

사람이 사는 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숨으로 사는 것이요, 하나는 자취로 사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숨자취로 사는 것이다.
‘왕녀님. 고향 땅에 데려다드리겠습니다.’


 

책 내용 요약은 잘 할 자신이 없어서 리디북스에서 대충 긁어왔다.

 

내용이 피-폐하다.

피폐물이 독자를 피폐하게 만드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주인공을 피폐하게 하는 상황에 대한 묘사를 세세하게 하여 독자마저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고

둘째는 피폐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의 심리를 아주 세밀하게 풀어내 독자의 기분도 함께 피폐하게 만드는 거다.

<숨자취를 더듬은 적 없다>는 두번째 방법에 아주 충실한 작품이다.

아비가일의 고뇌와 한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스며나오는 고통스러움이 반복적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그걸 보는 독자의 멘탈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아 물론 상황이 끔찍하지 않았단 건 아니다. 모두가 미쳐돌아가고...이 작품에서 미치지 않은 건 라미아(새끼 여우)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를 더욱 배가시키는 건 문장이다. 문체와 스토리의 궁합이 잘 맞는다.

잘 쓰이지 않는 단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갑갑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그 단어를 통상적이지 않게 활용하여 이질적이고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끔 문학적 허용의 범주의 밖으로 벗어나는 문장도 있지만,

나는 작가가 공을 들인 문장이 서사와 잘 맞아 빛을 발하는 순간을 좋아해서 괜찮았던 듯.

 

책을 읽기 전에 '자신의 신념 속에서 살던 아비가일이 자신의 세계를 깨부수고 어른이 되는 이야기'일 거라 지레짐작 했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예측이었다.

이 이야기는 아마사(무거운 짐)와 아마사(없어지게 될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타인이 지운 짐이 짐을 진 자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그 짐이 얼마나 무겁게 사람을 짓누르고 망가뜨리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작품에서 비중있는 주연은 죄다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에 짓눌려 채 자라지 못한 사람들이더라.

 


- 자신은 마른 짚 더미 같은 사람이었다. 가진 모든 것이 건조하되, 왕녀라는 불씨 앞에서는 제 스스로를 다 불태워 바칠 수 있는.

 

- 생생한 현실을 감내하고 이 악물며 버텼다. 이 끈을 놓아서는 안 됐기에 끝끝내 놓지 않았다. 살아온 삶이 그러했기도 하거니와, 또 그만큼이나 중한 이유는, 네가 자랑스럽다. 그 한 마디가 제 목을 조르는 까닭에. 그 한마디는 휘청대는 아비가일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고 걷게 했고 뛰게 했다.

 

- 개인의 욕망은 결국 타자의 욕망이라 했던가. 역시 우습고 징그럽게도 진실한 말이었다.


 

그런 그들이 사랑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성장하는 내용은 절대 아니고...

알렉은 (내 개인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는) 새로운 아마사를 기어코 만들어 다시 짊어엎었다 죽어버렸고,

아비가일은 사비나가 자신을 불태워 아비가일의 아마사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완전히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베네딕트는 모든 진실을 안 뒤에야 아마사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즉, <숨자취를 더듬은 적 없다>는 운명을 개척하는 이야기가 아닌, 운명에 휩쓸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특히 아비가일은 가혹한 운명의 희생자인 동시에 가해자라는 점에서 인상깊었던 캐릭터이다.

<숨자취를 더듬은 적 없다>에는 절대적인 가해자와 피해자는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는 늬앙스를 품은 말이 종종 등장한다.

 


끝난 것을 내가 붙들어서 당신을 죽이고 나를 죽였습니다. 소망 없는 이 땅에 당신의 숨을 붙들고 내 자취를 붙들었습니다. 이걸 이제야 깨달아 버린 것은 내 죄가 너무 크기에. 눈앞만 보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눈앞마저 어두웠습니다.


 

여담인데 작중에 나온 성범죄자들 다 비참한 말로를 맞게 되어 기쁠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기뻤음.

아비가일과 베네딕트의 결말도 진짜 이 작품에서 나올 수 있는 최대한의 해피엔딩인데도 슬픔... 오타쿠는 슬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