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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로맨스)

[로맨스판타지 e북 리뷰] 옷장 속의 윌리엄 - 남주가 셰익스피어라고요???

이 글은 '옷장 속의 윌리엄'과 'Fate/stay night'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폴히 작가님의 전작인 '답장을 주세요, 왕자님'을 정말 재밌게 읽었음에도 '옷장 속의 윌리엄'은 처음 출간됐을 때 영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아니, 손이 가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거부감마저 좀 들었죠. 왜냐고요? 여러분, 남자주인공이 셰익스피어랍니다.

네, 어린 시절에 다들 읽어보셨을 4대 비극과 5대 희극을 쓴 대문호요.

 

극작가이자 시인이었던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

 

장장 12년 간 조상님들을 공경하는 유교문화권의 분위기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역사교육을 받은 저로서는

아무리 제 직계 조상이 아니라도 정말 납득할 수 없었지만... 알라딘에서 갑자기 할인행사가 들어가길래 못 참고 사서 읽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뭐 어때요. 사실 저는 이미 역사 인물 모에화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덕질을 한 경험이 있거든요.

 

사후 약 1500년 뒤 지구 반대편에서 미소녀가 되어버린 브리튼의 전설적인 군주 아서 왕

 

솔직히 저는 'Fate/stay night'의 원작도 차마 플레이해보지 못했고, 아르토리아가 아닌 다른 창작 캐릭터를 덕질했지만 어쨌든 결백한 건 아닙니다.

제가 사랑했던 이야기는 무럭무럭 자라 수많은 게이머들의 지갑을 터는 가챠겜으로 발전했고,

이미 그 게임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성별이 바뀌었고 에디슨은 사자머리에 근육빵빵한 히어로가 되어버렸으니까요...^^

그런고로 이미 버린 양심 한 번 더 버리는 셈 치고 편하게 '옷장 속의 윌리엄'을 읽은 겁니다.

 

제 걱정과 달리 이 소설의 셰익스피어는 진짜 역사 속의 셰익스피어같지는 않습니다.

일단 작가님께서 중세인과 현대인의 가치관 차이가 걱정되신 것인지, 근대 유럽의 소년을 중세로 보내버린 다음,

다시 현대로 잠깐 보내 주인공인 '줄리아 그린'을 만나게 했거든요.

옷장 속에서 진짜 중세 소년이 튀어나왔다면 정말 대문호를 한낱 유흥거리로 삼아버린 기분이 들었겠지만,

이미 근대 유럽에서 중세로 한 번 날라갔다니 그냥 이건 셰익스피어가 아니라 로판남주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 때부터 책에 몰입했고, '옷장 속의 윌리엄'은 마음이 열린 독자들을 언제든지 책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만큼 매력적인 소설이었습니다.

 

줄리아는 돌발성 난청을 앓은 이후로 자꾸만 움츠러들게 되었고 오랫동안 사이좋게 지낸 소꿉친구와 소원해졌죠.

설상가상으로 부모님은 늘 큰소리로 싸우고 있어 줄리아의 마음을 불안하게 합니다.

그 때 우연히 옷장 속에서 잘생긴 소년이 나오게 됩니다.

이 소년은 줄리아에게 다시 소꿉친구와 친해질 계기를 만들어 주고, 망쳐버릴지도 모르는 발표회를 아주 근사하게 만들어주기도 하죠. 

줄리아가 이 소년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당연지사였고, '옷장 속의 윌리엄'은 두 주인공이 시간의 제약을 넘어 사랑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윌리엄과의 달달한 로맨스보다는 줄리아와 소꿉친구 '헌터'의 이야기, 그리고 줄리아 가족의 이야기를 더 흥미진진하게 읽었기 때문에,

헌터와 줄리아 부모님의 등장빈도가 현저히 낮아지는 줄리아의 대학 진학 이후부터는 영 시큰둥하게 읽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줄리아가 계속 '맥베스'와 '햄릿'이 세상에 나오지 않으면 어쩔까 걱정하는데, 작년에 '답장을 주세요, 왕자님'을 읽고 햄릿 완역본 읽기에 도전했다

처참히 실패한 자로서...사실 어느날 갑자기 햄릿의 대본이 세상에서 완전히 소멸할 것도 아니고 그냥 진작에 데리고 살지 싶었고...

그래도 '답장을 주세요 왕자님'은 햄릿과 맥베스를 까먹었으면 읽기 곤란해지는 순간이 오는데 반해

'옷장 속의 윌리엄'은 셰익스피어의 셰자도 몰라도 읽는 데 큰 지장이 없어 다행이었습니다.

아서왕 전설을 몰라도 페이트 프랜차이즈를 즐길 수 있듯이 말이죠^^

 

그래서 왜 하필 셰익스피어가 남자주인공이었을까요? 답은 소설 말미에 나옵니다.

 


그러니 당신이 혹시 서점에 가서 난생 처음 보는 이름의 작가가 쓴 소설을 잡는다면, 비난을 퍼붓기 전에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 소설이 너무나 저열하다면, 그는 셰익스피어일 수 있다.

문장이 너무 길거나 짧다면 그건 셰익스피어가 쓴 문장일 수 있다.

눈알을 뽑고, 배를 가르고,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잔인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면, 그것 역시 셰익스피어일 수도 있다.

벼락출세한 까마귀같이 나타난 신인을 욕하기 전에 셰익스피어가 아닐까 생각해 보아라.

템스강의 백조처럼 고결하고 순수한 글을 본다면 그것도 셰익스피어일 수도 있다.

온갖 우스꽝스러운, 사랑스러운, 진실된, 야만적인, 살아 움직이는 글을 읽고 그것들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고 싶을 때마다 의심해 보길 바란다.

그 소설은 나의 연인, 위대한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것일 수도 있으니.

 

옷장 속의 윌리엄 2권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