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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애니·게임·기타

나의 그녀들(1) - 카시와자키 세나

18년에 다른 블로그에서 쓴 글 재업. 다른 캐릭터 이야기도 써보려고 했는데, 죄다 비슷한 소리일 것 같아서 후속편은 쓰지 않았었다.

 

 

나는 카시와자키 세나의 얼빠로 시작했다.

 

긴 오타쿠 휴덕기를 거치고 있던 2014년 말, 나는 아주 우연히 '나는 친구가 적다'라는 소설의 단행본 표지를 본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살면서 저렇게 예쁜 캐릭터는 처음 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때 나는 휴덕 상태라 그냥 잠깐 생각만 하고 지나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중에 재입덕하고 월정액권 끊어서 애니메이션 이것저것 보다가 당시 보았던 캐릭터가

'나는 친구가 적다'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에 나온다는 걸 알게 됐고, 그 캐릭터가 궁금해서 '나는 친구가 적다'에 손을 댔다.

나는 친구가 적다(이하 나친적)은 재미는 있었지만 내가 성희롱을 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그런 게 여태까지 나친적 말고 딱 둘 있었는데 하나는 시모세카였고 다른 하나는 오레츠이였다.

시모세카는 도쿄도 청소년 보호 조례 개정안에 반발하여 나온 작품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고 오레츠이는 ... 모르겠다.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나친적은 오만가지 성적 대상화에 익숙해져 어지간한 섹스어필에 눈 깜빡 않는 남초 오타쿠 커뮤니티에서조차

'금로리 은로리는 좀 너무한 거 아니냐'라는 말까지 나오게 만들었을 정도로 성적 대상화가 심하다.

물론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나이도 많고 대놓고 글래머 캐릭터였던 세나는 제일 열심히 섹스어필을 하고 성희롱도 가장 다방면으로 심하게 당했다.

나는 그 순간마다 화면을 끄고 싶은 충동이 들었으나 끌 수 없었다...세나를 계속 봐야 했기 때문에....

2기까지 다보고 도대체 내 하드에 차마 남겨놓을 수 없는 물건이라면서 다 삭제해버렸는데 결국 세나 다시 보고 싶어서 돈 주고 재다운로드함......

나는 내 2D 최애캐들 중에서 세나를 가장 강렬하게 사랑했다. 세나는 내가 사랑했던 캐릭터 중 가장 결점이 많은 캐릭터다.

자존심이 지나치게 센 탓에 조금이라도 남에게 져주지 못하고 주변 인간관계를 다 파탄내버리는 제멋대로의 캐릭터.

난 얼빠로 시작했지만 세나가 제멋대로이지 않았다면 그렇게 사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난 세나가 제멋대로이기 때문에 세나를 사랑했다.

사람이 덕질을 하는 이유는 엄청나게 많지만 나는 세나를 통해 약간의 대리만족을 얻었다. 이 대리만족감을 얻기 위해선 이입을 할 요소가 필요하다.

평범캐인 내가 공부 안 해도 성적 잘 나오고 이사장 딸에 운동만능에 광역 어그로를 끌 배포까지 있는 세나랑 닮은 구석을 찾긴 사실 좀 힘들다.

하지만 세나를 비롯한 나친적 캐릭터가 오타쿠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건 작품 자체가 재밌어서이기도 했지만

캐릭터들이 어디 한 구석 공감할만한 데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뭐 사회생활 잘하는 오타쿠들도 있는데, 오타쿠들 대다수는 자기 취미생활 숨기려고 염증 걸려있어서 사람들한테 쉽게 못 터놓는 성향으로 변했거나

사회의 이런저런 시선을 견디는 경험 정도는 다들 겪어봤을 것이다.

사회에서 이해 못 받는 캐릭터들이 자신들만의 은신처에 모여서 노는 상황이 묘사되는 것 자체가

오타쿠의 공감의 영역을 건드린 후에 그들이 원하는 판타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하렘물 덕질하는 여덕은 소수임에도 하렘물에 나오는 여자 오타쿠들은 꼭 하렘물만 덕질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세나도 친구 사귀겠다고 미연시를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나도 주변에 사람 많을 때는 걍 놀러다니다가

사람 없어지는 때에 꼭 다시 하렘물 잡고 덕질하는 인간이라서 세나한테 감정이입이 쉬웠던 거 같다.

요약하자면 세나도 인간이고 나도 인간이라서 노오력을 하면 조그마한 공통점 정도는 찾아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고,

세나는 내가 하지 못하는 비범한 행동들을 하며 내 욕망을 해소해준다. 누구든 제멋대로 굴고 싶잖아.

그렇게 하면 세나처럼 주변 인간관계 다 파탄나니까ㅋㅋㅋㅋ 그냥 참고 지내는 것 뿐이죠.

적극적으로 주위 고려 않고 내 욕망만을 위해 충실하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다 각오를 했거나 축복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세나는 각오는 별로 안 돼있던 거 같은데 워낙 스펙이 좋은데다 이사장 딸이라서ㅋㅋ 그리고 세나의 그 겁나 쎈 스펙 자체도 상당한 대리만족 거리가 된다.

지금은 세나한테 탈덕했는데, 이건 나친적이 오와콘(끝나버린 컨텐츠)에 가깝기 때문이다.

나친적은 한창 잘 나가다가 나를 비롯한 수많은 얼빠 오타쿠들을 함락시켰던 일러스트레이터 브리키 선생님이

연재 와중에 몸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급하게 원작과 관련 미디어믹스가 끝나버린 케이스다.

누가 말하기를 나친적의 해피엔딩을 브리키 선생님의 완쾌라는데 나도 브리키 선생님의 완쾌를 바랬고

갑작스런 원작의 엔딩도 급하게 마무리를 짓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애초에 난 라이트노벨 못 보는 병에 걸려있으니까 굳이 내가 안 보는 원작에 이러쿵 저러쿵 말 얹기도 싫기도 했고.

결론적으로 나친적은 끝났고 세나의 이야기도 끝났다. 더이상 세나는 나의 욕망을 실현시켜주지 못했다. 그래서 점차 탈덕 테크를 걷게 되었다.

사실 흥컨텐츠라 원작 전개 안 돼도 덕질할만하긴 했는데 원작 성희롱과 섹스어필도 견디기 어려웠던 나로선 2차는 차마 못 보겠더라.

대신 나는 나의 다양한 욕망을 실현시켜줄 여캐를 또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나중에 시간나면 다른 최애캐 이야기도 포스팅 해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