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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로맨스)

[로판 e북 리뷰] 요한은 티테를 사랑한다

 


티테는 요한을 사랑한다. 요한은 티테를 사랑할까?


 

아무것도 모르고 읽는 게 제일 좋다고 들어서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읽었습니다.

근데 이 이야기, 진짜 스포 안 당하는 게 중요합니다. 어차피 1500원밖에 안 하니까 속는셈 치고 사서 읽어보셔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 있음

 

로맨스 장르소설은 사랑을 엔터테인먼트로써 즐길 수 있도록 적당한 형태로 가공해서 내보입니다.

<요한은 티테를 사랑한다>(이하 '요한티테')도 그 목적에 아주 충실한 편이에요.

특히 절절한 사랑이 대내외적 요인으로 인해 성사되지 못하고 불타오르는 쪽을 선호한다면, '요한티테'는 아주 좋은 선택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여기까지가 이제 비종교적인 내용이었고요, '요한티테'는 주역의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듯이 종교적인 메타포가 꽤 많이 들어간 소설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요, 전 평생 교회 문턱 한 번 넘어본 적이 없고, 골리앗하면 스타 유닛부터 떠올리는 성경알못입니다.

그런고로 다른 훌륭하고 지적인 분들의 리뷰를 읽은 후,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려 했으나... 못 찾겠습니다. 검색해도 안 나와요, 엉엉.

이럴 때 인터넷에서 유구히 쓰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컴퓨터 견적 낼 때 헛소리하면 견적 제대로 내준다는 얘기가 있잖아요?

리뷰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누군가 이 글을 인터넷에서 읽으시고 극대노하신 나머지 댓글로 제대로 된 지식을 알려주실 수도 있습니다.

 

...아래는 그런 고로 써보는 약간의 헛소리.

 

티테의 이름이 'test'에서 유래됐는지, 'testimony'에서 유래됐는지에 따라 이 소설의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한 해석은 판이하게 달라지게 됩니다.

다행히도 이름의 정확한 유래를 작가님 SNS에서 찾았습니다.

 


요한은 티테를 사랑한다 작명의 비밀
티테 리베로 - 티테는 테스트의 변형. 리베로는 그냥 적당히 갖다 붙였습니다.
요한 - 저는 교황하면 이분부터 떠오르는 그런 세대...
리스이 비스 - 리스이는 청자(리스너)의 변형. 비스도 그냥 적당히 갖다 붙임

- 안경원숭이 @carlitosyricht


 

후, 요한의 이름이 사도 요한에서 유래됐는지 세례자 요한에서 유래됐는지 몰라서 울고 있었는데 다행이네요^^

아무튼...

그 옛날부터 사람들은 고민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신데 왜 악이 존재하고 인간은 고통받는가?

이에 대한 일반적인 답 중 하나는, 우리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을 지킬 때 비로소 그 선이 진정 의미있으므로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타락하였고, 인간의 본성인 선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이로써 악과 고통이 존재하게 됩니다.

 

다시 '요한티테'로 돌아와서, 요한의 입장에서 '요한티테'는 요한이 성신의 시험(티테)을 이겨낸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끌고 성숙하게 하기 위해 우리에게 시련(test)를 내리시듯,

성신은 인간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요한에게 일종의 시험을 부여합니다.

요한은 수없이 티테의 유혹을 받고, 심적으로는 이미 굴복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입니다.

요한은 티테를 사랑하기에 인류의 운명과 맞바꾸면서까지 티테를 지키려는 선택까지 하나, 결국 티테 스스로 불 속에 뛰어들게 되죠.

신께서는 인간이 감당 가능한 시련만 주시고 결국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기에, 개인에게는 불행한 결말일지언정 정도로 귀결된 겁니다.


요한은 이런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신과 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내기에 지고 말았고, 그 운명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늘 사랑을 믿던 티테가 그 순간만큼은 눈을 감았을까요? 그것 또한 신의 뜻일 겁니다.

티테는 요한을 위한 시험이자 인류의 미래를 위해 안배된 제물이기 때문입니다.

신은 항상 요한에게 감당 가능한 시련만 내리며, 그가 실패하지 않도록 안배합니다. 티테의 사랑과 선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티테의 존재가 사탄의 유혹(temptation)이었다면 티테는 눈을 떴고, 요한은 환속했을 것이며, 마신과의 협상의 여지는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책은 성경이 그렇듯 시련의 당사자인 요한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대신, 티테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티테가 요한을 사랑한 것이 신의 뜻이라면, 티테의 의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미래의 제물로써 안배된 삶을 걸어가고, 그 사랑마저 일종의 장치였다면 티테의 사랑은 의미가 없었을까요?

티테는 스토커였지만, 그 범죄조차 신의 안배였을지 모릅니다. 과연 티테의 악은 티테의 타락으로 단언할 수 있을까요?

애초의 성신의 안배가 정당한 최선책이었을까요? 선한 신의 전능한 선택이었을까요? 이 책에는 성신뿐만 아니라 마신 또한 나옵니다.

 

제가 후대의 신학과 종교철학에 대해 좀 뭘 알면 더 재밌는 얘기를 해볼 수 있었는데,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교회의 문턱을 넘어본 적도 없어서...

짧은 지식을 바탕으로 길게 이런저런 소리 쓰긴 했는데.. 뭐 재밌으면 되고 아니면 마는 게 장르소설 아니겠습니까.

독서의 가장 튼 목적이 재미라고 암묵적으로 독자와 창작자 간에 합의된 장르니까요. 재밌었습니다.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