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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로맨스)

영원한 너의 거짓말

 

얄팍한 소설을 싫어한다.

이렇게 말하면 '의도적으로 가벼움을 추구하는 장르소설이나 보면서'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생각이 거슬릴 정도로 얄팍한 것보단 아예 거대한 시도를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감안하고 보는 것도 많다. 다른 게 좋으니까 싫은 건 참을 수 있다.

 

'영원한 너의 거짓말'은 새로운 이야기까지 하진 않지만

(장르소설에 새로운 철학을 바란다는 것이 책 판매량 망하라는 이야기와 같은 의미란 건 알고 있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생각이 바르고 공감이 갔다. 그래서 좋았다.

 

이 이야기는 전설적인 탈옥수 로젠 워커를, 전쟁영웅인 이안 커너의 감시 하에

외딴 섬에 있는 감옥으로 이송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이야기의 반절 이상이 로젠 워커의 과거사 회상이지만.

소설의 장르는 로맨스가 맞고 로맨스 서사도 충실하게 쓰여져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폭력과 비이성이 어떻게 타인의 인생을 흔들 수 있는지 이야기하는 소설에 가깝다고 봤다.

 

 

로맨스 소설에 여성 권리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가면 작품이 지루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남자주인공이 '예스'만 외치는 로봇이 되거나, 누구나 다 알 법한 이야기를 다시 반복해서 읽어야 하거나.

그 과정에서 차별과 폭력이 그저 나중에 쾌감을 주기 위한 현재의 고통으로 전락한다면 더욱 최악이고.

불행한 과거사가 없는 것은 아닌데, 그것이 캐릭터의 현재가 되고, 작가의 생각을 담아낸다면 문제가 될 것이 전혀 없다.

영원한 너의 거짓말은 그렇기 때문에 얄팍하지 않았다.

 

캐릭터 또한 굉장히 잘 잡혀있다.

이안 커너는 로맨스 장르에서 정말 보기 드문, 신사적이지만 유약하지도 않은 캐릭터다.

'넵' 병에 걸리지 않은 개성있는 캐릭터가 도덕적 기준을 지키고 산다니... 귀하다.

로젠 워커는 로맨스 소설보단 청소년 소설에서 더 자주 마주쳤을법한 캐릭터인데,

멍청할 정도로 착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역겨울 정도로 이기적이지도 않다.

로젠 워커의 선택 하나하나가 이해될만큼 잘 구축된 캐릭터다.

 

 

아, 그리고 둘 다 서브컬쳐 아닌 쪽에서는 흔한 캐릭터인데, 서브컬쳐 쪽에서는 좀처럼 마주치기 힘든 캐릭터다.

 

이 이야기의 특이한 지점은 그 모든 것이 더해진 결과,

그동안 내가 읽은 로맨스 소설 중에서 일반 문학과 가장 유사해졌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문학에서 새로운 시선을 바라는 대신 원하는 메세지를 듣고 싶어하기 때문에 더더욱.

'영원한 너의 거짓말'은 장르소설이 으레 그렇듯이 그 시대 배경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 그 이상을 나아가지는 않지만,

솔직히 요즘 독자 중에서 누가 그걸 바랄까?

 

뭐 어쨌든, 로맨스의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지인들에게 무난히 추천할만하고,

페미니즘의 ㅍ자만 들어도 뒷목잡고 쓰러지는 사람만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권할만한 책이다.

특히 로맨스 소설을 본다고 주위에 고백할 때, '영원한 너의 거짓말'을 함께 추천하면

다들 로맨스 소설이 품은 심연은 모른 채, 적당히 조용한 취미를 가졌다 생각하고 넘어갈지도 모른다.

 

+

최근에 보던 판타지 소설이 완결나서 새로 연재하는 판타지 소설을 이것저것 맛보고 있는데

내 머리가 다 나빠지는 기분이라 좀 그랬음...

(정말 그 말 외에 달리 무슨 말로 내 기분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음)

그 와중에 괜찮은 소설을 봐서 정말 기뻤다.

 

근데 내가 쾌락주의적 독서관을 가진 것과는 별개로 일반 서적을 아예 안 읽지는 않음.

장르소설만 보다보면 지겨워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한 권씩 읽어주면 정말 좋더라.

좋아하는데도 자주 안 읽는 이유는...책 보다보면 내 멘탈이 다 깨질 거 같을 때가 잦아서 회복기가 필요함.

(영너거 정도면 안타까운 것과는 별개로 일상생활에 지장 안 받고 잘 살 수 있음)

여름에 롤리타 읽고 내가 '단순한 독자'라서 이런 고통을 다 받나 싶었고...한동안 아예 손 떼고 살다 요즘에 다시 좀 읽고 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영어와의 연애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나보코프는 다른 좋은 책도 많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