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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판타지)·라이트노벨

[판타지 웹소설 리뷰] 납골당의 어린왕자

단행본 표지가 굉장히 아름다운 납골당의 어린왕자 1권 표지

 


인간을 인간 아닌 것으로 바꾸는 죽음. 대역병 모겔론스.
굶주린 시체들과 싸우며 인간성을 버리려는 사람들.
결국 인간은 아무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이 혹독한 세계는, 사실 한 번의 여흥을 위해 만들어졌을 뿐.
안과 밖, 어디에도 사람을 위한 세계는 없다.
어두워지는 삶 속에서 마음을 지키며 별빛을 보는 한 소년의 이야기.




소개글은 늘 그렇듯이 서점에서 긁어옴.

1권 완독이 매우 힘들었다. 어느정도였냐면 올 겨울부터 꾸준히 시도해서 5월에 겨우 1권을 다 읽었음. 하지만 그 초반부를 넘기면 확실히 재밌다.

<납골당의 어린왕자>의 백미는 밀도 높은 전투씬 묘사가 아닐까 싶다. 1권 완독이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고퀄의 상세한 묘사 때문이다. 세세하게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기 때문에 전개 속도가 일반적인 웹소설에 비해 느리다. 하지만 책의 내용에 익숙해지면 이는 <납골당의 어린왕자>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 된다. 다양한 상황 묘사와 여러 바리에이션 덕분에, 전투씬의 연속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설 전반부 내용이 전혀 질리지 않았다. 전투씬 읽을 때마다 스팀 신작 패키지게임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읽어야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글이다. 상상으로 구현하려면 뇌내 리소스를 많이 써야 하므로 다른 일 하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날것의 고어한 묘사는 전투신에 국한되지 않는다. 디스토피아 사회도 여러 방면으로 거름망 없이 쓰여있어서 거부감마저 들 정도. 읽다가 차라리 좀비 찢어지는 전투 묘사가 희망적이고 긍정적이라고 소리질렀다ㅋㅋㅋㅋㅋ 특히 인터넷방송 채팅창 묘사가 지나치게 날 것 그 자체인데, (주인공도 극혐하는 거 같지만) 그 부분 읽을 때마다 몰입도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더러웠다. 그래도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나오는 빈도가 줄기는 함.

나온 지 몇 년 지난 작품이라 그럴까, 주인공인 겨울이의 성향은 일반적인 판타지 주인공과는 좀 다르다. 겨울이는 아주 상냥한 캐릭터다. 인간에 대한 기대를 품기 힘든 상황에서 여전히 선한 사람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추악한 인간의 모습 뒤에 담긴 욕망과 본능을 완전히 미워하질 못하고,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지도 못한다. 지나치게 착한 친구이고, 그런 한겨울을 내세우는 <납골당의 어린왕자>는 라이트노벨이 맞다. 이런 착한 친구는 현대판타지 장르에 가면 살아남을 수 없음ㅋㅋㅋㅠㅠ

그래도 <납골당의 어린왕자>는 웹소설이므로.. 게임과 현실을 분리시켜버려서 주인공 성격으로 인한 한계를 어느 정도 보완해두었다. 그 과정에서 인방이란 소재가 잘 활용됨. 그래도 작가님께서 포기를 못하셨는지ㅋㅋㅋㅋ 사이다라서 현판 주인공처럼 행동하기보단 사이다에 명확한 근거가 붙어있는 편이다. 현판 주인공에게 공감 못하는 분들께는 오아시스 같은 작품이나 다르게 말하면 이 부분 답답하다고 느낄 분들도 분명히 계실 듯.

정치 파트도 손발이 오그라들고 탈주하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좋았다. 독자 경험에 따라 의아한 부분이 생길수도 있는데 부족한 점에 대한 방어적 설정과 전개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넣어놔서 괜찮았다. 보면서 약간 스트레스 받았다ㅋㅋㅋ 다만 점점 미친놈 등장 -> 해결의 원패턴으로 변해서 후반부 갈 수록 힘이 빠지기는 한다. 다 다른 사람들인데 하나같이 같은 결로 미쳐있어서 별 차이가 안 느껴졌음.. 덕분에 겨울이가 전투에 집중하는 5권까지가 제일 재밌고, 그 이후는 가끔 나오는 전투씬을 기다리며 인내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17권에서 18권 넘어가는데는 거의 두 달 가량 걸렸을 정도.

어쨌든 이거 읽다보면 사람이 피폐해지는 건 맞는 듯ㅎㅎ... 건강한 멘탈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주의 기울이며 읽기를 권한다.


이하 스포일러 주의


위에서는 에둘러서 설명했는데, 겨울이가 승진하고, 미군 상황이 나아지면서 좀 읽기 힘들어진다. 비슷비슷한 광기의 빌런들만 계속 나왔다 사라지는 데 더해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화롭고 안정적인 전투만 이어져서...

로맨스가 별로래서 각오하고 봤는데, (그 로맨스가 그다지 내 취향은 아니었던 것관 별개로) 앤과의 사랑은 이 이야기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동안 가을을 위해, 주어진 시간을 연장하고자 필사적이었던 겨울이 <종말 이후>의 삶 그 자체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봄의 이야기와 더불어 관계 그 자체가 우리의 삶을 만들어주기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여담인데 겨울이가 앤을 사랑할 수 있었다면 좋겠다고 얘기한 건 지금까지 나온 캐릭터 중 앤이 가장 가을이를 닮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결말은 이미 소문을 듣고 봤던지라 그냥 그러려니 하긴 했다. 초인이 초인적 권한을 얻어야 해결된다는 결론은 좀 그렇긴 했고... 18권까지 쌓아온 이야기에서 나올 결론치곤 뜬금없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뭐 그래도 겨울이 행복한 것 봤으니 됐죠. 겨울이를 위한 최선의 엔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