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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로맨스)

[웹소설/로맨스판타지] 《그림자 없는 밤》 리뷰


사냥대회에서 적국의 습격을 받고 실종됐던 하얀밤 기사단의 ‘로젤린’
절벽아래에 큰 부상을 입은채 의식을 잃은 그녀를 간신히 찾아냈지만,
며칠 뒤 깨어난 로젤린은 간단한 언어조차 구사하기 힘든 중증의 기억상실 상태였다.

잠옷을 입은 채 맨발로 집안을 배회하지를 않나, 여기저기 반말을 하고 다니지를 않나.
심지어는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기까지!

아무리 봐도 어딘가 이상한 그녀. 정말 로젤린이 맞긴 한 걸까?


늘 그렇듯이 인터넷 서점에 게재된 내용 소개문을 복붙해옴.

웹소를 많이 읽다보니 내 취향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파악하게 되었다.
불호는 진작에 알고 있었는데 호는 잘 몰랐거든요.
요즘 깨닫고 있는 것이... 나는 개그코드 잘 맞는 작품에 많이 너그러워지는 편임.

바쿠만에 나오는 모 편집자랑 취향 비슷함

그리고 《그림자 없는 밤》은 나와 유머코드가 잘 맞는 작품이었다.

이 글의 유머의 핵심은 주인공 로젤린에게 있는데, 인간 사회의 상식에 익숙하지 않은 로젤린이 각종 사고를 치고 그 주변인이 수습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말이나 오해가 꽤 재밌는 편임.
그래서 로젤린이 집착하는(...) 대상인 리카르디스의 반응이 웃음포인트를 만드는데 중요해진다.
드립도 치는 쪽 만큼이나 받는 쪽도 중요하잖아요?

문제는 초반부의 리카르디스가 로젤린을 좀 지긋지긋해해서 처음 읽을 땐 웃음포인트가 잘 안 와닿았음.
그럼 그 지점까지 책을 읽게 만든 것은 무엇이냐?
리카르디스와 하카브의 수 싸움임.
이 소설은 머리 좋은 미남들이 생존을 위해 대륙의 운명을 판 위에 올려놓고 목숨걸고 싸우는 글이다.
그리고 그게 정교하게 잘 짜여져 있어서 굉장히 재밌었음.
도전자와 챔피언이 있는 싸움이 아니라 둘 다 벼랑끝에 몰려서 개싸움을 하니까 재미가 없을 수 없음.


이하 스포주의


자, 비록 장남은 아니지만 머리 좋고 얼굴도 끝내주고
맨날 앉아서 대가리만 굴리고 있지만 피지컬이 딸리지도 않고 성력도 세계관 최강 수준인 이 남자가 왜 벼랑 끝에 몰려있는가?
얘는 사실 황제의 친자가 아님.
황제와 황자가 서로 견제하다 황실의 대가 끊기는 일을 막기 위해 붉은수레바퀴 백작(로젤린 아빠)이 적당히 데려온 출신 모를 아이임.
때가 되었으니 난 무대 위에서 내려올게요~ 하기에는 이미 리카르디스가 탄 배에 너무 많은 사람이 탔음.
브레이크 없는 기차에 타서 막 내달리는 와중에 갑자기 세계최강 먼치킨 로젤린이 리카르디스의 손에 뚝 떨어진 거.

자, 여기서 문제 하나 드립니다. 리카르디스의 여자 취향은 어떨까요?
제 분석에 따르면 리카르디스는 적극적이고 살짝 백치미 있는 귀염둥이를 좋아합니다.
거기에 거센 무력으로 갭모에까지 만들어주면 뒤집어지게 좋아한다....고 저는 추정하고 있어요.
안타깝게도 기존 로젤린은 그 취향에서 벗어나 있어서 온갖 마음고생만 다 했지만
새로운 로젤린은 그 취향에 완벽하게 들어맞아서 자기도 모르는새 왕자를 꼬셔버린 것이라고...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실 로맨스 웹소설이 보통은 인물의 감정선을 굉장히 세세하게 짚고 넘어가거든요.
사랑이 성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성립시키려면 보통은 변명이 좀 필요하니까요.
근데 그림자 없는 밤은 로맨스 비중도 좀 있지만 리카르디스와 하카브의 대륙스케일급 맞짱도 풀어야 하고
거기에 제국의 음모까지 파헤쳐야돼서 굳이 로맨스까지 머리 아프게 꼬아둘 필요가 없어요.
이 소설에서 어두운 건 피비린내 나는 정치게임이고 밝은 건 로맨스니까요.
어쨌든 굳이 꼬아두지 않았으니 해명할 필요성도 없고 그래서 인물의 감정선을 세세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음.
그런데 인물들은 일반적인 로판 등장인물에서 어딘가 살짝 빗겨나 있거든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간접적인 감정 표현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근데 나는 앞에서부터 말했듯이 원래 개그가 취향인데다가 목숨 건 정치싸움을 굉장히 좋아해서 납득충의 자세로 이 글을 읽었음.
한마디로 객관성을 좀 잃은 상태임.
그래서 나는 이 부분이 재미포인트 중에 하나였는데, 이 글에 열린 마음이 없다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느꼈거나 글에서 해소가 덜 됐다고 느낄 수 있다고 본다.

이 글은 작가노트에도 나와있듯 크게 3부로 나뉜다.
리카르디스가 발타에 사절단으로 다녀오는 1부,
하카브가 제국 건국기념일 행사에 참여하는 2부,
그리고 발타와 제국이 전쟁하는 3부.
솔직히 2부가 좀 늘어진다고 느꼈는데, 떡밥 살포해서 회수 직전까지 작업해두고 연애진도 미리 쭉쭉 빼고 전쟁 전에 할 거 다 해두는 파트라서 그럼.
그래서 3부가 재밌었다... 정말...
로잘린이 늘 이기기는 하는데 로잘린의 몸뚱이는 하나고 전쟁터는 하나가 아니니까요.
마지막까지 누가 질까 누가 이길까 누가 죽을까 누가 살까 하다가 클라이막스에서 모든 걸 터뜨리는 그 뚝심이... 좋은 글이었습니다.

여담인데 사회 전반적인 문화•기술적 측면으로 파고들면 좀 밸런스가 안 맞는 느낌이 없잖아 있는데
그 부분이 크게 눈에 띄지도 않았고 밸런스 맞춘다고 현대전으로 넘어가면 그땐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역할을 하기 어려워짐.
왜 판타지 소설은 중세에 집착하는가? 근대전으로 넘어오면 전쟁에 코미디를 넣기 껄끄러워지기 시작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