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도서실 800번대 서가에 주르륵 꽂혀 있던 고전 판타지 소설의 향취가 느껴지는 소설입니다.
출간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세월의 흔적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좋은 글은 시간을 뛰어넘는구나 싶었어요.
다만, 요즘 판타지 웹소설에 길들여진 독자라면 호흡이 느리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말초적인 거 좋아해서 자극적인 웹소설만 찾아 읽어서 그런지, 긴 호흡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으려니 힘에 부쳤습니다.
책을 펼치기도 전에 엔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피폐한 소설일까봐 읽기 전에 좀 걱정했는데... (제 기준) 끝까지 꿋꿋하게 귀여운 모험물이었습니다.
고난과 역경의 스케일이 귀엽다고 말하기엔 좀 크긴 하지만, 파비안과 친구들은 모두 심지가 아주 굳거든요. 독자들의 멘탈을 든든하게 잘 지켜줍니다.
처음보다는 뒤로 갈 수록 이야기가 더 재미있어지고 속도가 납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파비안 일행의 머릿수가 많아지고 스케일도 커지거든요.
덕분에 주인공 파티는 주인공 포함 4명은 되어야 재미있다는, 밥 먹고 사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세월의 돌>은 낭만적인 이야기입니다.
끝을 알 수 없을만큼 거대한 호수의 아름다움과 고립된 수도에 우뚝 서 있는 눈부신 성의 모습을 그려주는 작품은 흔치 않죠.
<세월의 돌>이 긴 세월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일 겁니다.
그렇기에 파비안의 모험 또한 동화같고 지나칠 정도로 낭만적입니다.
웹소설로 연재됐다면 분명히 댓글창에서 싸움 났을 거예요. 사이다 없는 고구마 파티라고 하차하는 사람도 속출했을 거고요.
하지만 '세월의 돌'은 1권부터 계속 이런 소설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런 전개에 저런 이야기가 나와도 '파비안 일행은 그럴 것 같았어,'하면서 독자가 받아들이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근데 말이죠, <세월의 돌>의 낭만을 오로지 낭만 그 자체로 즐기기엔 제가 감수성이 부족한 탓에..
책의 유명세가 아니었으면 중간에 읽다 말았을 것 같기는 해요.
글을 읽을 때 웹소설의 주요 세일즈 포인트인 액션, 지략 등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이 책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후속편의 여지(?)를 남긴 결말이지만..
결말이 오로지 독자의 상상에 남아있기에 가장 행복한 형태를 예측할 수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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